시대가 많이 변했다. 점점 어린 시절 추억 감성들이 많이 생각나서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그때 그 골목에서’ – 추억 속 장소를 다시 걷다
어린 시절, 나의 세계는 놀이터와 학교, 그리고 집 앞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작은 반경이었지만, 그곳은 내게 온 세상이었다. 나는 이번 글쓰기 실험의 첫 시작으로 어릴 적 자주 다니던 장소들을 떠올려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불쑥 떠오른 건 동네의 작은 문방구, 겨울마다 어묵 국물 퍼주던 분식집, 그리고 친구들과 매일매일 돌던 뒷골목이었다.
최근에 용기를 내어 그 골목을 다시 찾았다. 바뀌지 않을 것만 같던 공간이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카페와 체인점이 들어섰다. 하지만 놀랍게도, 몇몇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낡은 전봇대, 삐걱거리던 철문, 벽에 남아 있는 낙서 같은 것들. 나는 그곳을 걷는 동안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글쓰기 실험을 하며 새삼 깨달은 건,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그 골목에서 나는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다시 떠올렸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 있는지를 되묻게 되었다. 그 질문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공간을 중심으로 한 글쓰기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시절의 감정, 꿈, 관계, 그리고 지금은 잊고 있었던 소소한 행복들을 되살려주는 통로가 된다. 글을 쓰며 내가 웃고 있는 걸 알아차린 순간, 이 실험의 의미를 확실히 느꼈다. 어린 시절의 골목길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곳에 살던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손편지의 기억’ –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꺼내보다
어릴 적, 나는 편지를 참 많이 썼다. 친구 생일이면 손수 그린 그림과 함께 편지를 썼고, 학기 말이면 선생님께 감사 편지를 건넸다. 요즘은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가 일상이지만, 그땐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손편지가 진심을 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번 글쓰기 실험에서는 그 시절의 편지들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의 감정과 표현 방식을 되살려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요즘의 나는 ‘글을 쓴다’기보다 ‘정보를 정리한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감정들이 쌓여 있었다. 편지 형식으로 어린 시절의 나에게 글을 써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나에게,
그때 네가 털모자를 쓰고 울면서 집에 들어오던 날 기억나? 반 아이들이 놀렸다며 입술을 꼭 깨물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 그날 엄마가 해준 말보다, 네가 조용히 다이어리에 써 내려간 문장이 더 위로가 됐을 거야. 지금의 나는 여전히 눈치를 보고, 가끔은 그런 약점을 감추려 바쁘게 살아. 그런데 말야, 네가 그날처럼 솔직하고 단단했던 걸 잊지 않을게.”
이런 편지를 몇 편 써보니, 예상치 못했던 감정들이 솟구쳤다. 울컥하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 감정은 단순한 향수라기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조각들이었다. 과거의 편지 속 진심, 그 단순하고 순수했던 표현 방식은 지금보다 훨씬 정직했고, 그래서 더 강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감정 표현을 포장하게 된다. 때로는 숨기고, 때로는 돌려 말한다. 하지만 이 글쓰기 실험을 통해 다시금 느꼈다. 어린 시절의 표현 방식은, 잊어서는 안 될 감정의 언어라는 것을. 그 언어를 복원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의 나를 더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다.
‘추억을 품은 사물들’ – 잊고 있던 것들로부터 받은 위로
어린 시절 물건 중 유난히 손에 익던 것들이 있다. 낡은 가방, 지워지지 않던 필통의 낙서, 첫번째 다이어리, 혹은 캐릭터가 그려진 인형 같은 것들. 이번 글쓰기 실험에서는 어린 시절 사물 하나를 골라 그에 얽힌 기억을 풀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나의 선택은, 중학생 때 쓰던 초록색 라디오였다.
그 라디오는 내가 처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해준 존재였다. 방 안 불을 끄고 이어폰을 꽂은 채 듣던 심야 라디오 방송은, 세상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사연을 들으며 웃고, 나도 사연을 보내며 두근거리던 밤들. 고장 나버린 그 라디오는 지금도 내 책장 구석에 있지만, 단 한번도 버리지 못했다.
그 라디오를 다시 꺼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물 하나였지만, 이내 그 속에 담긴 풍경들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던 그 시간, 낯선 목소리에 위로받던 그 밤들,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그 시절. 그리고 깨달았다. 그때의 ‘혼자만의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든 중요한 뿌리였다는 것을.
이 글을 마치며 나는 다시 그 라디오를 닦았다. 그리고 켜지지 않는 버튼을 몇 번 눌러봤다. 아마도 영영 켜지지 않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물건이 여전히 내게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사물은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타임캡슐이자,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지도와 같다. 글쓰기를 통해 그 지도 위를 따라 걷다 보면, 지금의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금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주 작지만 단단한 위로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