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내가 해외에 나가서도 문화충돌로 인한 에피소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여행지에서 겪은 일들을 소개 해 보려고 해요.
식당에서의 당황스러운 침묵: 반찬 리필과 말 없는 식사
몇 해 전, 독일과 브라질 출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전라도의 한 작은 시골 마을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었다. 시골의 한 전통 한정식 식당에 들어갔고, 그곳은 아주 조용하고 정겨운 분위기였다. 우리는 방 안 좌식 테이블에 앉아, 다양한 반찬과 국, 밥이 한꺼번에 나오는 전통 상차림을 받았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독일 친구인 안나가 작은 목소리로 “여기선 왜 아무도 말을 안 해?”라고 물었고, 브라질 친구 파울로는 조금 불편한 얼굴로 “왜 메인 요리가 없지?”라고 물었다. 우리는 음식을 앞에 두고 한동안 멀뚱히 앉아 있었다. 나는 익숙하게 반찬을 접시에 덜어 먹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특히나 브라질에서처럼 고기 중심의 식사를 기대했던 파울로는 김치, 도라지, 나물 같은 ‘작은 접시 음식’들을 보며 계속 “이건 사이드야? 진짜 메인은 뭐야?”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파울로가 좋아했던 오징어젓갈을 한 번 더 먹으려 했는데, 접시에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리필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내려놨는데, 나는 종업원에게 손을 들어 "이 반찬 좀 더 주시겠어요?"라고 말했고, 정말 자연스럽게 리필이 나왔다. 그때 둘 다 놀란 표정으로 “이게 무료라고?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야!”라고 반응했다. 그들에게 반찬 리필은 ‘상상도 못한’ 문화였다.
그날 식당을 나와서야 우리는 서로의 문화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는 조용히 식사하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고, 반찬을 중심으로 나눠 먹는 문화가 있다는 것. 반대로 유럽과 남미에서는 식사시간이 대화의 장이고, 메인 요리가 중심이 되는 구성이라는 것. 그때 느꼈다. 똑같은 ‘식사’라는 행위조차, 문화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
전통시장 속 문화적 충돌: 가격 흥정의 불편함
서울의 유명 관광지가 아닌, 강릉의 로컬 전통시장에 외국인 친구들을 데려간 적이 있다. 평소에는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이 많이 찾는 곳이었고, 나는 그곳의 정겨운 분위기와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먹거리를 소개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시장에서 가장 큰 문화적 충돌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 온 엘렌은 평소 공정무역이나 정가 문화에 관심이 많아, 흥정하는 행위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성향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시장에서는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가격을 조금 높게 부르는 경우도 있었고, 한국인인 내가 옆에서 가격을 조정해주는 방식으로 흥정을 했다. 문제는 내가 “이건 좀 비싼 것 같아요, 깎아주세요~”라고 웃으며 말하자, 엘렌이 당황한 얼굴로 “왜 값을 흥정해? 정해진 가격이 있지 않아?”라고 말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외국인이라서 ‘더 받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아 기분이 나빠졌고, 상인 입장에서도 한국 친구가 끼어들어 흥정을 시도하자 살짝 표정이 굳었다. 나는 단지 좋은 가격에 사고자 하는 의도였지만, 엘렌은 그 과정에서 거래 자체가 불편해졌던 것이다. 결국 우린 시장에서 많이 사지 못하고 나왔다.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엘렌에게 한국에서는 전통시장에서 흥정이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고, 이것이 상인과 손님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프랑스에서도 옛날에는 그런 문화가 있었어. 근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 너희는 아직 사람 냄새가 나는 거래를 하네”라며 조금 이해하는 눈빛을 보였다.
문화는 상대적이라는 말을 그때 실감했다.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했다. 결국 중요한 건 ‘설명’과 ‘이해의 여지’를 서로에게 열어두는 태도라는 걸 배웠다.
찜질방에서 벌어진 웃픈 사건들: 알몸 문화의 충격
여행 마지막 날, 서울 외곽의 찜질방에 갔다. 친구들에게 “한국식 힐링 문화”라고 소개하며 큰 기대를 안고 데려간 곳이었다. 그러나 찜질방은 예상치 못한 문화 충격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특히 독일 친구 안나는 ‘탈의실에서 알몸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녀는 “아무리 여탕이라도 모두가 벌거벗고 있다는 게 너무 낯설어”라며 망설였다.
나는 한국 사람이라 자연스럽게 목욕탕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유럽인에게는 신체 노출이 강한 ‘개인 영역 침범’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파울로는 더욱 난감해했다. 그는 남탕에서 수건 하나 들고 걷는 아저씨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이건 거의 퍼블릭 누드야!”라고 말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억지로는 아니고, 본인이 괜찮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결국 안나는 찜질복만 입고 찜질방 구역에서 휴식을 취했고, 파울로는 ‘경험은 해봐야지’라며 용기 내어 들어갔다가 10분 만에 나왔다. 그래도 찜질방에서 함께 계란과 식혜를 먹으며 나눈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문화의 충돌은 때로는 어색하고, 불편하며, 심지어 웃기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녹아 있고, 그것을 마주하며 웃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묘미 아닐까. 찜질방에서의 그 하루는 단순한 관광이 아닌, 서로의 문화와 인간됨을 교환하는 진짜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